꼭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게 된다고, 기를 쓰고 기회를 만들지 않아도 그렇게  잊어버려도 잊어버리려 해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때론 그것이 엉뚱한 곳에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인연(因緣)이라는 것은 정말 숭고하다.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멋지게 보여 줄 수 있을 때가 아니라 정말 초췌하고 삶에 찌들어 있을 때 만나게 되는 것이 싫지만.


아버지를 중환자실로 옮기고 나서 상심에 힘들어 할때 십이 년만에 다시 만났다.



그렇게 아버지의 첫 번째 입원이 끝나고 아슬아슬하게 봉합되었던 우리 집일때  그 사람을 만났다.

 ------------------------------------


아버지가 중환자실로 내려가는 그때 12년 만에 만난 그 사람에게서 문자가 왔다.
낮에 보낸 문자 투에 너무나 실망하였다고.  그때 당시에는 아버지보다도 그 사람에게 그런 문자가 온 것이 더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전화를 했다. 그런 문자를 보내 미안하다고 너무 미안하다고 하지만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중환자실에서 보호자를 찾아 그냥 끊고 말았다.

그 주치의 말에 굉장히 안 좋은거 같아 내려왔는데 상태가 좋다고 이렇게 상태가 좋으시면 내일 아침에 올라 가실수 있을거라고 원래 이병이 갑자기 안 좋아 질 수 있으니 다시 방 잡기도 힘들고 하니 하루나 이틀 지켜보자 하셨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전화를 받지 않는 그 사람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가 하려 했던 말 들 일부분을.

그리고 동생과 집에 와 밥을 먹고 내일 다시 입원실로 올라 갈 수 도 있다는 생각으로 빨래를 하고 아버지의 짐을 챙겼다. 그러던 중 다시 걸려온 중환자실 전화 혈관을 찾다가 공기기 폐에 들어가 기관 삽입을 하여야 한다며. 놀래서 동생과 택시를 타고 가니 내일 아침에 올게요. 하며  앉아서 양옆에 진짜 중환자들의 모습을 보며 불안해하는 아버지를 놔두고 뒤돌아 섰는데 그랬던  그 아버지가 의식도 없으시고 기계에 의해 숨을 쉬고 계신다.

의사는 혈관에 공기가 들어갔다. 폐가 찌그러졌다. 원래 병이 있어서 더 힘들다.어쩐다. 이런저런 말을 하는데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그냥 윙윙 거린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는데. 방금 1시간전에 멀쩡히 앉아 계시던 아버지가 왜 이렇게 된거지? 머라고 머라고 자꾸 옆에서 의사가 그러는데 그냥 웅웅 거린다.

 ------------------------------------



이상하리 만큼의 인연이다 이럴때 꼭 그사람을 다시 만난다. 이렇게 힘들때.


일본에 선전포고를 받고도 유감이라는 말만 하는 정부와 촛불시위는 나라를 망치는 시위라고 그렇게 신속히 모든 힘을 집결하여 떠들어 대던 그들은 아직도 이 엄청난 사실을 알고도 일언반구 초자 없다.

북풍의 힘으로 촛불을 헤쳐나가려고만 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타이틀 신문들
그런데 이들이 보수라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몸을 받치는, 말을 받치는 쓰레기가 아니라?

more..




정말 못마땅하지만 우리 땅을 자신의 땅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렇게 떠들어 봐야 대인배의 마음으로 참아 줄 순있다. 하지만, 엄연히 내 땅인 이곳을 자신들 마음대로 등기한다면 그것은 바로 개인간에는 도적질이요. 나라간에는 침략행위인것이다.

따라서 작금의 일본의 행위는 우리나라를 침략하겠다는 말과 다를바가 없는것이다. 굳지 총칼로 우리나라 땅에 오르지 않아도 그들은 차근차근 우리의 땅을 빼앗으려고 계단을 오르고 있고, 그런 거짓된 교육을 통해 길들여지는 일본인들에게 독도는 이미 그들의 땅인 것이다.


정말 정치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던 이 블로그에 정치 글로  넘쳐날 수도 있는 기회를 준 사람이 참 밉네.


재발 터지고 나서 막는다고 쇼하지 말고
 
터지기 전에 손봐라 재발 개새끼들아!!!!




"우리는,

  내가 촛불이며
  내가 바로 진실을 말하는 확성기 입니다. "

시국미사 성명서 전문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탈을 쓰고 너희에게 나타나지마는 속에는 사나운 이리가 들어 있다. 너희는 행위를 보고 그들을 알게 될 것이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딸 수 있으며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딸 수 있겠느냐?"(마태복음 7장 15절)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민을 상대로 마구 저지르는 오늘의 폭력상과 거짓들을 지켜보며 우리는 분노합니다. 주권재민을 힘껏 외치는 시민들의 고뇌를 마음에 품고 오로지 기도에 집중하기 위해 사제들이 오늘까지 이렇다 할 의견표명과 행동 없이 침묵 중에 지냈으나 이제 그런 절제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습니다.

국민이 그토록 간절하게 호소하건만 정부가 미국의 압박에 자진 굴복하여 문제의 쇠고기와 위험한 부속물 수입을 전면 허용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들끓는 국민여론을 제압하기 위해 몽둥이와 방패로 시민들을 패고 내려찍으며 무참히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로써 촛불에 담겼던 간곡한 뜻은 짓밟혔고 우리는 대통령과 정부의 존립근거에 대하여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각료들 그리고 한나라당의 교만과 무지를 탄식하면서 그들의 병든 양심을 교회의 이름으로 엄중하게 꾸짖고자 합니다. 아울러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해야 하는 사제의 양심에 따라 오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점을 경고합니다.

먼저 보수언론의 폐해를 지적합니다. 참여정부 시절 광우병의 위험성을 무섭게 따지고 들다가 현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미국산 쇠고기의 절대 안전을 강변하는 조선·중앙·동아일보의 표변과 후안무치는 가히 경악할 일입니다. 정론직필의 본분의 버리고 이해득실에 따라 말을 뒤집는 언론의 실상이 널리 알려진 것은 만시지탄이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국가정책의 많은 부분에 대하여 국민을 속이고 있는 현실은 더욱 큰 불행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이 순진하다고 착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그의 궤적을 잘 알면서도 혹시 경제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 싶어 지난 대선의 결과를 빚어낸 것뿐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기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금번 쇠고기 협상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도 울분을 터뜨릴 일이지만, 높이 받들고 깊이 새겨야 할 천심을 폭력으로 억누르는 정부의 교만한 태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저 미국에 충성하려 드는 맹목적 사대주의도 딱한 일이거니와 오늘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재앙은 무엇보다도 돈을 위해 정신의 가치를 값싸게 여기는 정부의 경박한 물신숭배에서 비롯했음을 지적합니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값싸고 질 좋은 외국산 쇠고기가 아니라 모두가 공생공락하는 드높은 자존감입니다.

국제적 망신을 일으킨 졸속협상이나마 정부의 주장대로 이에 복종하는 것이 한미FTA 체결 조건에 유리하고, 그래서 자유무역이 혹시 경제지수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억측이 설령 옳다고 가정해도 그 결과는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진 양극화 현상을 더욱 극단으로 몰고 갈 것이라는 게 교회의 판단입니다. 결국 정부는 불행한 미래를 강요하는 수단으로 공권력을 악용하여 국민의 통곡과 신음을 억지로 틀어막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요한복음 1장 5절)는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까지 촛불을 지켰던 민심을 지지하고 격려합니다. 우리 사제들은 청정한 수도자들과 전국의 모든 교우들과 함께 무장경찰들의 폭력에 숭고한 촛불의 뜻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 드리고자 합니다. 정부는 원천봉쇄와 강경진압 그리고 오늘 아침에 벌어진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압수수색과 체포 따위로 진실을 어둠에 가두려고 하겠지만 이런 모진 마음 때문에 국민이 받은 상처와 모욕은 더욱 깊어만 갈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대통령에게 호소합니다.

1. 국민은 너그럽습니다. 대통령은 우선 쇠고기 협상의 실패를 인정하고, 국민 앞에 겸손하게 사죄를 청하는 뜻으로 장관 고시를 폐하고 쇠고기 전면 재협상을 선언하길 바랍니다.

2. 먼저 들으셔야합니다. 소통을 강조하는 대통령은 먼저 국민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 진실을 깊이 헤아린 다음 국민과의 대화에 나서길 바랍니다.

3. 국민은 현명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국민 건강의 안전성과 이를 보증할 검역주권입니다. 일부 언론이 쇠고기 문제를 친미와 반미, 진보와 보수의 이념갈등으로 몰아감으로써 핵심을 왜곡하지 말아야 합니다.

4. 과잉 폭력진압을 지시한 어청수 경찰청장을 해임하고 시위 중 연행된 사람들과 대책회의 구속자들을 전원 석방하십시오. 그리하여 존엄을 바라는 국민의 상처를 씻어주길 바랍니다.

5. 국민 여러분에게도 호소합니다. 촛불은 평화의 상징이며 기도의 무기이며 비폭력의 꽃입니다. 우리가 비폭력의 정신에 철저해야만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버릴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신앙인에게 호소합니다. 촛불은 안으로는 내면의 욕심을 불태우고, 밖으로는 어둠을 밝히는 평화의 수단입니다. 저마다 마음을 비우고 맑게 하여 지친 세상을 위로하고 서로에게 빛이 됩시다.

2008년 6월 30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귀속말로 들은것을

지붕위에서 선포하여라."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more..






왜!
앞장서서 달리는 사람의 손에 몽둥이가 있습니까?
왜!
그들은 그것을 그가 했으니 나도 했다는 이야기로 면피 하려 하십니까?


앞을 막는 이가 아무리 방패로 찍고 몽둥이로 뒤통수를 후려치고
물대포로 고막이 반절이나 없어지도록 뿌려 대도, 
말 바꾸기를 하며 폭력 시위라 모략을 꾸미며 폭도라 매도해도 
굴하지 않고 우린 정말 당당하게 거짓이라 이야기하고,
비겁한 행위는 중지하라 소리 높일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 누가 그 어떤 불합리한 물리적인 힘으로 막는다 하여도 나 자신이 촛불이며 거짓을 거짓이라 이야기하는 확성기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가 촛불이며
  내가 바로 진실을 말하는 확성기 입니다. "

폭력은 우리의 이야기를 거짓이라 말하며 우리와 함께 하는 시민이 폭도라고 말하는 그들에게 그것을 증명하는 기회를 주는 행위일 뿐입니다. 몽둥이를 든 손에 촛불을 쥐어 줍시다.  더 많은 촛불이 강이 되고 바다가 되도록 그 손에 촛불을 쥐여 줍시다.







Quizas quizas quizas

일상글 2008/02/01 01:59
침묵은 금이라고들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죠?
한참을 말했는데도 다른 쪽에서, 한마디도 안 하고 있으면 정말, 환장하죠.
때려 주고 싶기도 하고...

기껏, 대답 한다는게 고작, “그냥”이라는 말 아니면, “아닌데” 뭐가 아니라는 이야기인지 무엇이 그냥이라는 이야기인지, 참 난감합니다.
이 사람이 나랑 이야기하기 싫어서 그러나 아니면 바쁜가?
머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그리 안 되는 게 저의 부덕함 때문인지도 모르죠.
특히나, 분명히 아는 것 같은데도 반응이 시원찮을 땐 더더욱 화가 나다 못해 자기가 초라해지죠.

이제 대답 좀 시원스럽게 하세요.
모든 좋으니깐, 가뜩이나 불확실한 대답들만 듣는 세상에 친구에게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그런 소리를 들으면 미쳐버린답니다.

Yes 인지 아니면 No 인지, 그렇게 대답하기 어렵다고 해도 노코멘트는 하지마세요.
그 노코멘트라는 말 속에서 한참을 붙잡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낼지도 모르니깐요.

혹 그 사람의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노코멘트하세요.

그 사람이, 미쳐버려서, 확 돌아 버려서, 그 생각만 하게 하고 싶다면 말이죠.
이제 누구라도, 무엇을 물어볼 때는 확실히 이야기해야겠어요.

침묵은 때론 사람을 미치고 팔짝 뛰게 하니깐요..

more..




사용자 삽입 이미지



너무 너무 편해 편한게 제일이닷~!!

겨울에 발가락이 끊어지도록 추워도 신는 쪼리







목표를 잃어 버리는 것처럼 힘들 때는 없다.

능력이 없다는 것, 이것이 재능이 없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지금의 경우이다.
깊게 알기보다는 넓게 알아 버렸다. 좋게 말해 그런 거지 평소 말대로 하자면 잡기에 능하고 머 하나 잘하는 건 없고 참견하기 좋아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겠지.

꿈이 없다는 것인가? 그것도 아닌데 솔직히 꿈은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줄곧 신발 공장 사장이었다. 타이거를 신어 보고 싶다는 그 꿈 하나로 줄곧 신발만 그려댔으니. 결국, 그 직전까지 가기도 했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결국은 신발을 더 잘 그리려고 쓰였던 도구가 밥벌이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이 밥벌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재능에 회의가 들 때가 처음 종이 모형 만들던 시절 전단지를 만들 때였지 아마. 종이 모형 만드는 일은 그나마 재미있었는데. 전단지랍시고 만드는 그건 아 왜 이리 막막하던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려던 나에게 큰 산이었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그 산을 못넘고 있다.

이 일에 회의가 들 때마다 원래의 꿈이었던 신발공장 사장이 그리워진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천장에 신발을 그리며 자고, 끌리는 디자인에 모르는 이에게도 다가가 어디서 샀는지 어디 제품인지 물어보고. 이젠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물도 아니고 술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이미 너무 많이 돌아와서 다시 원래의 길로 돌아가려니 까마득하기만 하다,

진정 내가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그 나이를 처먹도록 그걸 하나 몰라?" 이 유행가 가사가 이리도 가슴에 와닿는건. 목표를 잃고 헤매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실망했기 때문이겠지.

참 속으로 타들어 가고 있다. 난 그냥 듣고만 있고 그것에 맞장구 쳐주고 사실이 아니더라도 니가 옳다고 말해 주는 진정한 내 편이 있었으면 한다. 언제나 맞장구 쳐주고 설령 그것이 나의 뜻이 아니더라도 그 사람에게 맞혀 주려 노력했는데.

너무 돌아가고 있다. 진정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냥 돈 떨어지면 돈 한 푼 아쉬워 이것저것 기웃거리다. 돈 몇 푼 손에 쥐면 그걸로 또 만족해하며, 밥 쳐 먹고, 쳐 자빠져 자고, 똥싸고, 뒤돌아서 잊어버리고.

망설임

일상글 2007/06/27 05:09
망설임 이란 사람을 어렵게 만든다.

아직도 다 못했지만. 이젠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생각이 든다. 말수 적고 말하지 않으려던 나였는데. 무엇이든 나는 내가 먼저 버린 적은 없다. 하다못해 초등학교 때 나를 그렇게도 미워하던 짝꿍이 준 '너를 싫어한다'던 쪽지 마져도.

'버린다.'는 것과 '버림받았다.'는 것과의 불분명한 경계선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그렇기 때문에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끄트머리라도 잡고 오지게 늘어지고 있으니깐.

한때는 무척이나 냉소적이었다.
바라보는 모습도 생각하는 현실도. 냉소적인 것 또한 자신의 방패막이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지금 들어 생각이 든다. 경계선에서 줄타기하고 있는 양손에 긴 장대를 들고 한쪽에는 냉소라는 추를 다른 한쪽에는 자아 학대라는 추를 달고 걷고 있다.

둘 중에 하나가 더 무거워지거나 가벼워지는 일 없이 그 장대를 의지하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사라져 버리니 기우뚱거리고 있는 꼴이 아닐까?



바지를 입을때 어느 쪽 다리를 먼저 넣는지 목욕을 할 때 어느 곳을 먼저 닦는지. 국과 밥이 있을때 국을 먼저 먹고 밥을 먹는지, 밥을 먼저 먹고 국을 먹는지. 사소하지만 신경 써서 생각하지 않으면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것들처럼 아주 작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지만 막상 물어보면 선뜻 대답할 수 없는 길을 걷고 있는 거다.






감성적인 듯하면서 절대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원래 글에는 그 사람의 모습이나 성격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점점 확실해 진다.

앞에서는 굉장히 부드럽고 감성적이고 여성스럽고 그런 거 같지만 뒤돌아 보면 아니 그 사람을 좀 더 알게 되면 감성적이기보다는 가식이 가식보다는 느끼함이 자리한 그 얼굴에 짜증이 막 난다.

그래, 무슨 말이든 뒤돌아서면 잊을 수 있다.

하지만, 난 그 자리에선 그냥 웃고 넘어가고도 뒤돌아서면 정말 화가 나서 미치고 팔짝 뛰어 본적이 한둘이 아니다. 그렇다고 다시 쫓아가서 "아까 그 말 진짜 열받거든 너 한 번만 더 말하면 사생 결단이다!"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뭐하고. 만약 그렇게 이야기하면 나만 병신 되는 건데.

솔직히 사람 앞에 대 놓고 싫은 소리 못하는 우유부단함이 나에겐 많아서 그런 거 같다. 지금도 생각 같아서 한밤중이라도 나를 무시하는 말들을 했던 그네들의 집에 쳐들어가 그런 말들을 따지고 싶은 게 한둘이 아니지만. 뒤돌아서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젠 일단 앞에 대놓고 욕하는 연습이라도 해야겠다. 누가 나 때문에 가슴 아픈 게 싫어서, 만약 내가 막 대하고 있는 거라고 그러면, 아니 그렇게 하고 나선 그게 걱정되어 잠을 못 잤는데. 차라리 그럴 바에는 이제 앞에 대놓고 욕하는 게 낫겠지.

아침마다 운동하기.

거울보고 구체적인 자기 최면 걸기.

자신감을 갖기.

이제 하나 더 추가 해야 겠네.

"남의 싫은점 앞에서 대놓고 이야기 하고도 미안해 하지 말기."
는 어느정도 되어 가고 있는거 같은데.  어찌보면 그렇지도 못하지.

이젠 만나서 좋지 않은 사람중에 한사람으로 되어 가고 있는것이다. 자신이 인연을 끊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것이 자신뿐이 없다는것을 왜 모를까? 공공의 무시와 적임을 느끼기 때문에 그것을 잊기 위해 혹 빠져나오기 위해 둘레를 치려 자신이 먼저 그 사람들과 인연을 끊는다고 말하는 걸까?  하지만 나 역시 그사람이 이젠
만나서 좋지 않은 사람중에 한사람으로 되어 가고 있는것이다.